'불순명'은 용납 불가? 대구대교구 권위주의 단면

천주교 대구대교구의 한 사제 면직 사례를 통해 본 교회의 민낯
최근 천주교 대구대교구에서 발생한 한 젊은 사제의 면직 사건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2022년 12월 말, 심기열(야고보) 신부가 갑작스럽게 면직 처분을 받았는데, 교구 측은 공식 사유로 "교회법을 어기고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면직 통보 당시 구체적인 설명 없이 하루아침에 사제직이 박탈되었다는 점에서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문제 제기자에 대한 조직적 응징

심기열 신부 사건의 내막을 살펴보면, 이 사건은 심 신부가 교구 내부 문제를 용기 있게 제기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2021년 말, 심 신부는 자신이 보좌로 있던 본당 주임신부의 잦은 부재와 업무 태만을 교구에 알렸습니다. 일반적으로 젊은 사제가 상급자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이례적이라는 교구 관계자의 법정 증언처럼,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문제 제기'는 교구 내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고, 문제 해결보다는 문제 제기자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으로 이어졌습니다. 


'정신질환' 낙인과 '순명'의 왜곡

교구는 해당 주임신부의 의혹 대신 심 신부의 태도를 문제 삼기 시작했습니다. 2022년 3월, 심 신부에게 갑작스러운 심리상담 권고가 내려졌는데, 정체불명의 '자문단' 의견이라며 심 신부에게 의사 진단 없이 '편집성 성격장애'가 의심된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심 신부를 직접 대면하지 않은 자문단의 판단으로, 교구는 그를 다른 본당으로 전보한 뒤 일방적으로 '휴양' 명령을 내렸습니다. 휴양 조치는 보통 질병 등으로 요양이 필요한 사제에게 내려지지만, 심 신부의 경우 본인의 동의나 의사의 소견 없이 징계처럼 강행되었습니다. 교구는 휴양 이유로 14년 전 신학교 인성검사 결과의 일부 부정적 소견과 새로 전보된 본당에서의 여성 신자와의 접촉을 문제 삼았으나, 이 근거들이 빈약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교구는 사제의 덕목인 '순명'을 권위적 통제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심 신부는 교구의 명령에 따라 자신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고,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교구는 심 신부가 교구가 지정한 특정 병원에서 치료받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불순명'으로 규정하고, 2022년 12월 그를 면직했습니다. 이는 "윗말을 절대적으로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 사람의 사제직을 박탈한 것으로, 비판 세력에 대한 복종을 강요하고 불응 시 배제하는 권위주의적 행태라는 지적입니다. 

성범죄에는 관대하고 내부 고발에는 가혹한 이중 잣대

이 사건은 천주교회 내부 징계의 심각한 이중 잣대를 드러냈습니다. 취재에 따르면 대구대교구에서 심 신부 이전에 면직된 사제는 드물었으며, 그마저도 다른 성격의 비위 때문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미성년자 성추행으로 징역형을 선고받거나, 여직원을 성추행하고, 노래방에서 여성 도우미와 술판을 벌인 다른 사제들은 면직 처분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사제들에게는 상대적으로 관대했던 교구가, 정작 자신의 권위에 문제를 제기한 사제에게는 가혹한 면직이라는 극형을 내렸다는 점은 교회 내부의 이중성과 위선을 보여주는 사례로 지적됩니다. 이는 교회가 성범죄나 중대한 비위보다는 조직 유지와 권위 보호를 우선시하며, 내부 비판에 대해서는 '괘씸죄'를 적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는 비판으로 이어집니다.

교회법 뒤에 숨은 세속적 책임 회피

심기열 신부는 부당한 처분에 맞서 2023년 부당해고 무효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신부는 노동자가 아닌 종교인"이라는 이유로 본안 판단 없이 소송을 각하했습니다. 1심과 2심 재판부 모두 "종교단체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사실상 교회의 내부 징계에 대한 세속 법원의 판단을 유보했습니다. 이는 교회가 세속 법의 책임으로부터 얼마나 쉽게 벗어날 수 있는 구조인지를 보여주며, 동시에 피해자가 사법적으로 구제받기 어려운 현실을 드러냈습니다.

요약
심기열 신부 면직 사례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내에서 발생한 심각한 문제들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정당한 내부 문제 제기가 '정신질환' 낙인과 '순명'의 왜곡된 강요로 이어졌고, 결국 면직이라는 가혹한 처분으로 귀결되었습니다. 이는 중대한 성범죄나 비위를 저지른 다른 사제들에게 적용된 잣대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교회 내부의 이중성을 보여줍니다. 또한 사법부마저 '종교의 자율성'을 이유로 판단을 유보하면서, 교회의 권위주의적 행태와 세속적 책임 회피 구조가 공고해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한국 천주교회가 복음의 가르침에 비추어 내부 성찰과 쇄신이 필요함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서품식 장면